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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요즘 좀 뾰쪽합니다

기사승인 [31호] 2019.11.25  20: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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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이 수필가. 문학세계 수필부문 신인상, 소나무 5길·가락문학회 회원.

“집에 소금 있어?”

남편이 삼계탕 국물을 몇 숟가락 뜨더니 부추전 굽느라 바쁜 나를 불러 세웠다. 나는 한 손에 뒤집개를 들고서 홱 돌아섰다. 순간 가슴이 답답해 오면서 짜증이 차올라왔다. 얼마나 나를 무시했으면 집에 소금 있냐고 물을 수 있단 말이지?

“그럼 있지, 집에 소금도 없을까 봐? 싱거우면 소금 좀 달라고 하면 될 것을 소금이 똑 떨어졌으면 또 무슨 꼬투리를 잡으려고?” 나도 모르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 집에 소금 있냐는 가벼운 물음에 대한 답이 상황을 걷잡을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나 역시 깜짝 놀라 멈칫했다. ‘아차, 내가 너무 지나쳤어!’라고 깨달았을 때,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난 뒤 남편의 짧고도 굵은 한 방의 공격이 들어왔다.

“뭐라카노! 그기 그래 성낼 일이가?” 남편은 숟가락을 딱, 내려놓았다. 나는 그런 남편을 본체만체하고 다시 프라이팬 위에 놓인 부추전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밀가루 반죽에 듬성듬성 자른 부추와 어슷어슷 썬 빨간 고추, 그리고 가지런히 채 썬 하얀 감자가 어우러져 부추전의 완성도가 한층 더 높아 보인다. 제 각각 독특한 색깔을 지녔음에도 이렇듯 한없이 조화로운데 우리는 왜 이런 모습일까? 달랑 둘이 살면서 말이다. 직장에서 고생하고 돌아올 남편을 기다리며 즐거웠던 요리 시간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서로에게 숯검정만 남았다.

몇 해 전부터 주변에서 ‘갱년기’ 때문에 고생하느냐고 물어오면 아직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때만 해도 갱년기에 관심도 없었고 설사 갱년기가 온다 해도 버텨낼 자신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몰라보게 날카로워진 성격과 내 몸의 변화를 느끼면서 알게 되었다. 드디어 내게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이 찾아왔다는 것을.

갱년기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변화는 컸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분비가 줄어 난소가 노화되어 완경에 이르렀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서글픔이었다. 여성으로 누려온 익숙한 것들과도 하나둘 이별해야 했다. 신체적 변화에 따른 당황스러움에 우울감마저 찾아왔다. 무슨 말로 나를 위로할 수 있을까? 평소에 잘 먹던 음식에서도 두드러기가 올라와 응급실을 드나들었다.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지만 내게 무척 힘든 시기인 것은 분명했다. 수면장애로 피로감이 누적되어 수면유도제 처방을 받기도 한다.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인지 하루는 길을 가다 쓰러져 함께 외출한 딸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나의 이런 달갑지 않은 변화에 동갑내기 남편이 누구보다 고생이 많다. 남편은 갱년기에 좋다는 석류, 칡, 홍삼, 마늘… 등 온갖 건강식품들을 쟁여 놓고 나를 응원한다. 그런 남편이 있어 고맙고 든든하다. 다만, 한 번씩 눈치 없는 행동으로 내 속을 뒤집어서 탈이다. “당신은 참 별나단 말이야. 우리 엄마는 안 그란 것 같은데?” 하는 남편의 무심한 말에 나는 어김없이 땅벌이 되고 만다. “어머님도 그 어딘가에 화를 쏟아냈든가 어쩔 수 없어 꾹꾹 누르느라 힘드셨을걸! 무딘 당신이 뭘 알았겠어?” 하며 매섭게 쏘아붙였다. 남자인 남편이 어머님의 갱년기를 눈치챘을 리 만무하다. 여자가 갱년기를 지날 때 최고의 약은 주변의 따뜻한 관심이라는 것도.

요즘 들어 “늙어나 봤나 나는 젊어도 봤다”는 유행가 가사에 절로 공감을 한다. 내 삶이 젊음의 강을 유유히 건너와 나이듦의 나루에 닿은 듯하다. 이제는 팔팔 끓던 마음을 가라앉히며 곱게 익어가는 법을 배워야 할 때이다. 이렇듯 마음을 자주 다잡아보지만 오늘처럼 뾰족하고도 ‘낯선 나’를 만나게 될까봐 가끔은 겁이 난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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