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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숙 작가. |
슬픈 소식이 날아왔다. 폐암으로 고생하시던 큰시누이가 돌아가셨다. 며칠 전 병문안을 갔을 때 우리를 보고 그동안 고마웠다며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우셨다.
그날 가족들은 마지막으로 돌아가며 인사를 했다. 나는 형님 두 손을 잡고 말했다. “형님, 정말 형님은 잘 사셨어요. 그 불편한 몸으로 아들 둘과 딸을 네 명이나 낳아서 공부 시키고 결혼 시켰잖아요. 아이들이 다들 반듯하게 자라서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각자 자리 잡고 잘살고 있어요. 형님은 최선을 다하여 정말로 훌륭하게 사셨어요. 저는 형님을 만나 좋았어요.”
형님은 결혼 후 셋째 아이를 출산하면서 중풍이 왔다. 그때는 형편도 어려웠고, 의료수준도 낮아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후유증이 남고 말았다. 말을 하면 입술이 삐뚤어지고 어눌하다. 오른쪽 손은 제대로 쓸 수 없고 발은 절뚝거린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죽으려고 산에 올라갔다가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 죽을 용기로 살아보자고 내려왔다고 한다. 처음 내가 시집왔을 때 형님과 대화가 어려웠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으니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끔 휴일에 시골에 있는 형님댁을 방문할 때면 풀어놓아 키운 장닭을 한시도 망설임 없이 잡아서 우리에게 먹이고, 양파며 마늘이며 자루자루 넣어 챙겨주셨다. 그 모든 것들은 다 마음대로 듣지도 않는 손으로 땅을 파고, 잡초를 뽑고,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채소를 심고, 곡식을 심어서 거둬들인 것들이었다.
시아버님 생전 생신과 돌아가신 후 제사 때는 새로 찧은 쌀을 머리에 이고 시골 버스를 타고, 불편한 다리 절뚝거리며 친정엘 왔다. 그리고 깨끗한 돈 삼만원을 상에 올렸다. 그 마음과 정성이 너무 고마워 배웅하면서 손에 용돈을 꼭 쥐어드리기도 하고, 가끔 함께 찜질방에도 같이 가서 하루라도 더 쉬어 가시라고 붙잡곤 했다. 그때 너무 좋아하시며 “내가 죽어도 울지 마라. 너무 고맙다.”며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형님은 잃어버린 줄 알았던 셋째 딸이 스님이 되어 이십여년 만에 돌아왔을 때 태어나서 제일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그 아이는 18살 때 학교 간다고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는데, 그동안 절에서 지냈고 스님이 되고 나서 마음 흔들릴까 해서 소식도 끊고 찾아오지도 않았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산청에 있는 조그만 터를 그 스님이 절을 짓도록 기부하였다. 형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망설임이 없었다.
우리는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을 영웅이라 부른다. 어려운 현실을 불굴의 의지로 이겨내고 크게 성과를 이룬 사람들은 마땅히 추앙받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들꽃같은 여인,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그 자리에서 역할을 해준 형님을 오늘은 영웅이라고 말하고 싶다.
위대한 삶을 사신 형님, 형님의 인생은 위대한 성공적인 인생이었습니다. 이제 가시는 먼 길 그렇게 절뚝거리며 힘겨웠던 육신, 훨훨 벗어버리고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가소서.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