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삼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상(均一床)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손바닥 속에 들어갈 만한 극히 짧은 시이다. 거지소녀는 거지장님 어버이의 생일날을 맞아 꼬깃꼬깃 모은 엄청 큰 돈을 가지고 주인 영감의 큰 소리 속에서도 이날만큼은 온 마음으로 밥 한번 대접하고 싶었다. 손님답게, 사람답게 밥상을 받을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소원인지. 이 시는 읽고 또 읽어야 그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다. 돈 때문에 애걸하고 아파하는 사회가 얼마나 슬픈가. 그러나 그 아픔마저 이겨내야 하는 게 우리 인생의 숙명이 아닐까. 시인 김종삼은 장편(掌篇)이라 이름 붙이며 눈물 한 방울과 함께 장편(長篇)이라는 긴 여운을 남긴다. <우민>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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