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연암문화제가 열린 27일 사또행렬 퍼레이드는 "실제로 있지도 않은 허위사실로 목민관인 연암을 욕되게 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은 왜곡된 역사"라는 주변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연암문화제 관계자가 가마를 타고 연암 부임행차 퍼레이드를 펼쳐 질타를 받았다. <사진: 독자제공> |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연암 박지원 선생의 애민사상과 개혁정신을 왜곡하는 행사가 진심어린 조언에도 불구하고 끝내 진행됐다.
지난 27일 함양연암문화제에서 열린 연암의 사또 행렬 퍼레이드는 실제로 있지도 않은 허구의 사실을 기획·연출했다. 화려한 복장을 한 취타대의 주악에 맞춰 가마에 올라탄 연암의 부임행차는 많은 사람들의 볼거리를 만들려고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서부경남신문>은 22일자 사설을 통해 안의현감을 지낸 연암 박지원의 실학사상을 재조명하고 그의 업적을 돌아보는 연암문화제에서 취타대를 앞세워 가마나 말을 타고 행하는 떠들썩한 부임행차는 애민·위민의 목민관인 연암을 욕되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당장 그만두어야 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한 바 있다.
안의 지역의 많은 유지들과 기관단체장들도 기사가 나간 뒤 두 차례 가량 회의에서 의견을 나눴고, 몇몇 기관장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실이었는데, 역사왜곡이란 있을 수 없다”면서 “속 시원한 지적에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연암문화제에서 사또 부임행사는 춘향전에서 탐관오리의 대명사로 일컫는 변 사또의 부임행차를 남원 춘향전에서 재현하여 볼만하다고 하여 벤치마킹한 것으로 생각되나 이는 콘셉트를 잘못 잡은 것이다. 특히 9000만원의 예산으로 하루 동안 이뤄지는 행사에서 1000만원이 넘게 소모되는 사또행렬 퍼레이드와 초청가수 공연 위주의 행사는 문화제의 성격에도 맞지 않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연암은 지천명을 지나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목민관으로 안의현감을 부임하면서 단출한 행장을 하고 조용히 왔다. 부임해서는 물레, 베틀, 방아를 찧고 발전을 하는 물레방아 등 열하일기에 소개된 유용한 기구를 제작 보급해 백성들을 이롭게 하며 실학정신을 구현하는데 앞장섰다. 오직 백성을 생각하고 백성을 위한 목민관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칭송받는 것이다.
안의 광풍루 공원에 있는 안의현감 선정비 안내판. 연암 선생의 이름은 없다. <사진: 서부경남신문> |
안의 광풍루 공원에는 안의현감을 지낸 현감들의 선정비 19기가 있다. 그렇지만 연암의 선정비는 없다. 연암이 이임할 때 백성들에게 부담이 된다고, 공적비를 못 세우게 했기 때문이다. 이를 안타까워 한 학계에서는 조선후기의 대문장가이며 실학자인 연암 선생을 기리기 위해 1986년 5월 옛 안의현의 동헌이었던 안의초등학교에 박지원 선생의 사적비를 건립한 것이 유일하다. 더불어 우리나라 ‘수필의 날’도 조선시대 금자탑으로 평가받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최초 집필 날짜를 따 7월 15일로 제정했다.
그런데 이런 연암의 정신을 왜곡하는 행사가 버젓이 열렸다니 통탄스러운 일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함양군수는 이번 부임행차에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고, 군민들을 존중해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사또행렬 퍼레이드에는 역대 함양군수와 문화제위원장이 청소년들이 끄는 가마에 올라 기세를 떨쳤다. 현재 시대정신과도 맞지 않는 일이고, 군민들 위에서 군림하는 자세로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날 저녁에 열린 연암 부임행사에 앞서 오전에는 행복안의 봄날센터에서 ‘안의현감 시절 박지원의 행적과 문학작품’을 돌아보는 연암학술대회가 열렸다. 행사에는 연암 선생의 직계후손인 반남박씨 대종중에서도 대거 참여해 그의 업적을 되돌아보고 기렸다. 후손들이 취타대를 앞세우고 가마에 올라탄 연암의 부임행차를 지켜봤다면 그 모습이 자랑스러웠을까. 아니면 귓불까지 빨개져 부끄러움에 떨어야했을까.
함양연암문화제위원회는 군민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왜곡한 행사를 진행한 데 대해서는 반성하고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 부임행사 사또행렬 퍼레이드는 아집과 고집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향후 연암문화제는 실학의 땅, 안의에서 그의 실천적인 업적이 더욱 부각될 수 있기를 바란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