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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으로 온 유진규의 일성 “예술의 본질은 자유입니다”

기사승인 [96호] 2022.07.30  14: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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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규 ‘아시아1인극제·거창’ 예술감독

창작의 자유 없으면 그냥 기술자
축제도 간섭 따르면 행사용 축제

거창과의 인연 아시아1인극 연결
제의와 놀이가 있는 공연과 난장
아시아의 공연정신 추구해 갈 것

춘천마임축제를 세계 3대 마임축제를 키워낸 유진규 마임이스트가 ‘아시아1인극제·거창’ 예술감독으로 부임했다. 위대한 예술가를 만난 거창이 세계적으로 부흥할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유 감독은 “우리는 작지만 빛나는 별을 꿈꾼다. 아시아의 1인극들은 작지만 별처럼 빛나서 많은 사람들이 그 빛을 찾아오게 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사진: 아시아1인극협회>

올해 ‘아시아1인극제·거창’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유진규는 1세대 마임이스트이며 예술가이다. 그는 1989년부터 2013년까지 25년간 춘천마임축제 예술감독을 맡아 세계 3대 마임축제로 키워낸 인물이다.

지난 7월 춘천에서 50년 마임인생의 토크쇼를 시작으로 그를 다룬 영화와 공연도 만나는 행사가 이어졌다. 앞서 지난해 유진규는 예술의전당에서 한국 마임의 역사에 보내는 깊은 경애를 담아 기획된 ‘유진규 마임인생 50년, 내가 가면 그게 길이지’를 성황리에 진행한 바 있다. 유진규는 늘 새로운 시도를 해온 예술가이다. 1998년 초연한 ‘빈손’은 한국적 마임의 전형으로 유럽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설치공연 ‘방’시리즈 등은 공연예술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며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는 예술의 생명인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25년 몸담았던 춘천마임축제 예술감독직을 던지기도 했다. 코로나로 인해 극장 공연을 닫았을 때에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누구보다 뜨겁게 예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며 ‘살아있는 한국마임의 역사’로 불린다.

유진규 예술감독은 거창에서 아시아인의 긍지와 인류가 현재 겪고 있는 전쟁, 인류의 아픔, 코로나 등의 위기 속에서 예술축제가 해야 할 행동을 고민하고 실천하고자 한다. 그가 참여하는 것만으로 거창은 위대한 예술가를 얻은 것이다.

유진규 마임이스트의 공연 모습.

- 세계 3대 마임축제 중 하나인 춘천마임축제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아시아1인극제’ 예술감독으로 부임해 모두가 깜짝 놀랐는데 소감을 말씀해주시죠.

“나도 깜짝 놀랐습니다. 1988년 심우성 선생님이 아시아 1인극제를 시작할 때 그 뜻에 공감해서 함께 했지만 가끔씩 들여다보곤 한동안은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3년 전에 다시 참가하면서 아시아 1인극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잠깐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그 역시 그냥 지나쳤습니다. 올 초에 갑자기 예술감독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해서 깜짝 놀랐어요. 당연히 못 한다고 했죠. 나이도 있고. 제가 올해 칠순입니다. 준비도 안됐고. 그러던 중에 그만 삼봉산문화예술학교에 불이 났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거절하기가 힘들었어요. 불나서 힘든데 거절까지 하자니. 그래서 불난 집에 부채질 하자는 마음으로 함께하게 됐습니다. 불난 집은 다 잘 된다고 하잖아요.”

- 춘천마임축제 예술감독으로 재직하던 2013년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운영위원직에서 사퇴했습니다. 예술가에게 있어 창작이란 무엇인가요.

“한 공연자의 표현의 자유가 사실은 큰 문제로 번지면서 예술감독직을 사퇴했죠. 모름지기 예술축제는 예술의 생명인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합니다. 그것은 예술감독이 해야 할 일이죠. 저는 춘천마임축제와 25년 동안 함께 해오면서 국내 최고의 예술축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런데 표현의 자유를 강제하라는 관을 포함한 외부의 압력이 들어온 겁니다. 받아들이는 순간 예술축제의 생명이 끊어진다는 생각에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그 공연자의 공연을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했습니다. 끝난 뒤 개인적인 공격이 심해지고 더 이상 싸움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사퇴를 했습니다. 예술의 본질은 자유입니다. 예술가에게 창작의 자유가 없으면 그냥 기술자가 되는 겁니다. 예술축제도 창작의 자유를 보장해 주지 못하면 행사용 축제가 됩니다.”

- 원래 전공이 수의학이었는데, 어떻게 마임니스트가 되었나요.

“저는 어려서부터 동물과 함께 사는 게 꿈이었죠. 그 꿈을 잘 키웠고 수의학과까지 같습니다. 그 꿈은 세렝게티 같은 아프리카의 자연동물원에 가는 거였죠. 저는 70학번입니다. 당시는 군사 독재정권 시절이었죠. 군사교육으로 억압된 고등학생이 기대한 대학의 낭만과 자유가 없었어요. 그래서 낭만을 잃어버린 대학에서 방황하다가 만난 것이 연극이고 그만 거기에 빠지게 되었죠. 학교를 중퇴하고 들어간 극단이 공교롭게도 연극에 몸짓, 마임을 같이 하는 극단 ‘에저또’였습니다. 전위적인 실험극단 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임의 매력에 빠져서 결국은 마임의 길로 나간 것이죠. 얼마 전에 마임인생 50주년 기념공연 ‘내가 가면 그게 길이지’를 춘천에서 했습니다.”

유진규 ‘아시아1인극제·거창’ 예술감독.

- 1인극과 마임의 공통점과 다른 점이 있다면.

“1인극은 혼자 하는 연극, 즉 모노드라마입니다만 인류는 혼자서 표현하는 장르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어 명칭을 모노드라마(monodrama)가 아니라 모든 공연예술 장르에서 혼자 하는 공연 솔로 퍼포먼스(solo performance)로 바꿨습니다. 아시아 1인극제의 개념을 다시 정리한 것이죠. 마임은 여러 형태의 공연 장르인 전통연희, 연극, 춤, 마임, 퍼포먼스, 인형극, 음악극, 마술, 서커스, 복합장르 등의 가운데 하나입니다. 마임은 말없는 몸의 움직임으로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예술입니다. 판토마임같은 대중적인 형태부터 신체마임이라 불리는 추상적인 형태까지 표현방법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합니다.”

- 거창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한대수 회장과의 관계가 궁금합니다.

“거창과의 인연은 오래 전에 제가 거창고등학교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가 참 특이 하더군요. 그래서 그때 중3이었던 제 아들에게 이런 학교가 있다고 학교소개 책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얘가 거창고등학교를 들어갔어요. 그 담에 거창연극제와의 인연도 기억납니다. 30년 전 쯤 됐을까. 입체 소극장에서 거창연극제 참가 공연하면서 이런 작은 도시에서 극단과 극장이 연극제를 한다니 하며 이종일 선생과 단원들에게 놀라움을 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아시아 1인극제에 오면서 다시 거창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거창의 도시 분위기는 별 특색이 없구나했는데 지내다보니 아, 이런 매력이 있구나 하는 게 조금씩 보입니다. 거창이 거창다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한대수 선생과는 심우성 선생님 제자시절 부터 쭉 보면서 선생님을 잘 보필하고 있어서 고마워했습니다. 또 공연이 아니라 여러 번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사회활동 현장에서 마주치고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심 선생님 뜻을 이어 받아서 아시아1인극제를 지키고 살려나가는 의지와 노력에 저도 공감하고 함께합니다.”

- ‘아시아1인극제’가 지향하는 축제의 주제는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싶은지요.

“식민시대 이후 아시아의 공연예술은 급속히 서양에 종속됐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민족 고유의 예술은 곳곳에 살아있습니다. 그것을 지키면서 동시대의 예술을 추구하는 아시아의 1인극인들이 매년 거창에 벌이는 축제가 아시아 1인극제입니다. 또한 아시아 공연예술은 서양과 달리 제의와 놀이가 함께하는 공연과 난장을 추구합니다. 아시아의 공연 정신인 겁니다. 우리 민족도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창에서 열리는 축제니까 난장을 일컫는 경상도 말로 ‘난리버꾸통’을 벌이기로 했습니다. ‘거창문화원 난리버꾸통’ ‘삼봉산문화예술학교 난리버꾸통’이 그것입니다. 지역의 정체성을 그대로 살리려는 의미입니다. 특히 거창민간인학살을 주제로 한 공연을 신원 박산합동묘역에서 갖는 것은 제의의 의미를 담은 것입니다. 아시아1인극제가 나가야 할 길을 정리해보면 첫째는, 아시아 1인극의 전통을 스스로 인식하고 주체적인 독창성으로 자생해 나갈 길을 찾는다. 둘째는, 아시아 1인극인들이 자기 긍지를 갖고 서로의 작품세계를 교류하는 네트워크를 만든다. 셋째는, 예술을 놀이와 제의로 즐기는 우리의 축제를 오늘의 관객과 함께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코로나19로 겪는 인류의 위기 속에서 예술축제가 해야 할 행동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 이러한 방향으로 새로운 모습의 아시아1인극제를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 거창으로 1인극제를 보러오는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거창은 작고 외진 곳입니다. 아시아1인극제는 더 작고 더 외진 축제 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작지만 빛나는 별을 꿈꿉니다. 거창도, 아시아의 1인극인들도 작지만 별처럼 빛나서 많은 사람들이 그 빛을 찾아오게 하고 싶습니다. 마음 놓고 오셔서 마음껏 즐기십시오. 우리와 함께 빛나는 별이 됩시다. ‘거창아! 아시아1인극제야! 빛나라!’”
 

이영철 기자 achimstory@hanmail.net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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