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련 산청군지리산도서관 글쓰기 회원. |
맑은 냇가를 보면 어린 시절에 놀던 외갓집 동네가 그리워진다. 그곳에는 공태와 숙녀가 있었다.
어느 여름날 셋은 강 건너, 고아원 안에 살던 고모할머니 집에 가기로 했다. 마당에는 그네와 미끄럼틀이 있다. 셋은 재미있게 놀 수 있어 자주 놀러 갔었다. 공태는 기다란 대나무 작대기를 질질 끌고 왔다. 셋은 냇가로 갔다. 며칠 내린 비로 평소와 달리 황토물이 세차게 굽이치면서 흐르고 있었다. 황토물이 나는 무서웠다.
“안 가면 안 돼?” “작대기 꼭 잡고 건너면 된다.” 공태는 앞장을 서서 장대를 잡았고 끝은 숙녀가 잡았다. 나는 가운데에서 장대를 잡고 섰다. 공태는 “작대기 꼭 잡아, 놓으면 안 돼!”하고 소리쳤다. 나는 손에 힘을 넣어 대나무를 꼭 잡았다.
시냇물 중간쯤 왔을 때 물이 가슴 위까지 차올랐다.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순간 잡은 작대기를 놓고 말았다. 나는 흙탕물과 함께 둥둥 떠내려갔다. 잠시 후, 눈을 뜨니 하늘이 보였다. 둑에 누워있었다. 다시 눈이 감겼다.
“연아! 경연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주위를 살펴보았다. 외할머니 외숙모 이웃사람들이 모두 근심스런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예’ 대답했다. 모두 환한 얼굴로 “경연이 깨어났다.”며 한목소리로 말했다.
“여긴 어디예요?” “외할매 집이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외숙모가 말했다. 외할머니는 아무 말도 못하고 소맷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다시 잠이 몰려왔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개운하게 깨어 날끼다.” 공태 할매 목소리가 아련히 들렸다.
강둑을 걷던 이웃동네 아저씨가 지나가다 흙탕물에 휩쓸려가던 나를 살렸다고 한다. 외숙모는 부엌에서 밀가루반죽에 강낭콩을 넣어 술빵을 만들었다. 간식으로 자주 만들어 주던 빵이다. 걱정한 이웃들과 나누어 먹었다.
몇 년 지난 후 외가 식구들은 외삼촌 직장을 따라 서울로 이사를 했다. 어릴 적 추억이 떠올라 그 뒤 몇 번 외갓집이 있던 동네에 갔었다. 외갓집 담 너머 까치발가락처럼 세우고 들여다보았다. 외할머니가 계시던 안방과 내가 놀던 대청마루도 그대로였다. 대문이 열려있어서 문 앞에서 목을 쭉 빼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낯선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외갓집은 변한 게 없었다.
숙녀가 살았던 집 앞 우물가로 갔다. 우물에서 배추를 씻고 있던 아주머니에게 공태와 숙녀에 대해 물었다. 공태는 할머니와 살았는데 이사를 가버리고 숙녀는 사천으로 시집을 갔다는 말을 들었다.
추억 속에는 공태와 숙녀는 있는데, 그들이 어디쯤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열 살도 채 안 된 아이들, 나를 안전하게 시냇물을 건너게 하려고 가운데 서게 했던 공태와 숙녀는 시냇물에 떠내려가는 나를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 부모에게 또 얼마나 혼났을까? 오늘따라 착한 마음씨를 가진 동무가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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