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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전 시간이 머문 내 기억 속의 여행 ‘1989 목포’

기사승인 [82호] 2022.01.17  11: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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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숙 작가

이진숙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
‘1989 목포’ 출간하고 떠난 여행

열일곱 목포로 고등학교 진학
함께 뒤놀던 동무들이 그리워
고향집이 부모형제가 보고 싶던
그 시절 따라 다시 찾아왔지만

기억 속은 손바닥처럼 훤한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낯설어

이진숙 작가의 ‘1989 목포’ 출판기념회. 이 작가는 신안 증도에서 태어났고, 창신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경남문학’ 소설 부문 신인상을 받았다. 이번 소설집은 세 번째 작품이다. <사진: 이진숙>

목포, 첫 만남과 떠남

‘1989 목포’ 표지.

사방이 바다인 섬, 잿빛 먹먹한 바다만 보고 자란 섬 아이들은 뭍을 향한 막연한 동경을 품었던 것 같다. 누군가 뭍에 나가 기차와 버스, 쭉쭉 벋은 고가도로를 보았다고 자랑하면 동네아이들의 온갖 부러움을 샀으니까.

이진숙 작가.

내가 목포에 처음 나온 때가 열다섯 여름이었다. 어머니는 고장 난 전기프라이팬을 내 손에 들려서 하루에 한 번 오가는 정기여객선에 태웠다. 친지 상을 당해 하루 일찍 목포에 가신 아버지를 그곳에 가면 만날 수 있다면서 말이다. 뭍으로의 나들이가 처음이던 그땐, 세 시간의 뱃길이 설렘보다는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선실밑창에 고인 담배연기를 피해서 갑판 위에 쭈그리고 앉아있을 때였다.

“유달산이다!” 누군가의 외침에 고개를 돌렸다. 눈앞에는 거대한 바위산이 무뚝뚝하게 섰고 바로 아래 목포항이 희부윰한 안개를 감은 채로 우릴 맞았다. 하지만 항구에서 기다리신다던 아버지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세찬 빗줄기가 쏟아졌다. 내 주머니에는 동전 몇 푼이 들어있을 뿐. 나는 전기프라이팬을 싼 보자기를 꽉 쥔 채 공중전화부스 안에서 비를 피했다. 버림받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가슴께 차오르자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목포와 첫 만남은 그렇게 축축하게 각인되었다.

열일곱에 고등학교 진학으로 다시 목포에 왔다. 어린나이에 자취를 하면서 학교에 다니는 일은 무척이나 외롭고 힘겨웠다. 고향집이 그립고 부모형제가 그립고 함께 뛰놀던 동무들이 그리워서 향수병에 시달렸다. 평생 가난했던 부모는 자식들이 못 배우면 자신처럼 가난할 거라고 아득바득 벌어서 쌀과 학비를 배편에 실려 보내왔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마치고 목포를 떠났다.

30여년 후, 다시 찾은 목포

영화 ‘1987’ 촬영지 연희네 수퍼.

소설집 한 권을 탈고하면 여행을 떠난다. 오랜 시간 수고한 나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인 셈이다.

두 번째 소설집 <700년 전 약속>을 출간하고는 딸과 함께 일본 동복사엘 다녀왔다. 이번에 세 번째 소설을 내면서 목포에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표제가 <1989 목포>이기도 했고, 두 번째 장편집을 냈을 때 지키지 못한 약속이 걸리기도 해서였다. 목포 <좋은집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700년 전 약속>을 읽고 손편지로 정성스런 소감을 적어주셨고, 그 답례로 꼭 방문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막상 여행날짜를 잡아놓았는데 코로나19 확진자가 수천 명대로 늘면서 상황이 안 좋아졌다. 이런 시국에 집을 나서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다 홀로 조용히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친구나 지인들과 만남을 잡지 않았고 정해진 일정 없이 발길 닫는 대로 돌아보기로 했다.

목포로 향하던 첫날은 겨울비가 얌전히 내리고 포근했다. 이대로 봄이 올 것만 같았다. 88고속도로를 타고 광주까지 한 시간 반 걸렸고, 광주에서 목포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렸다. 30여년 전 내 기억 속 목포는 손바닥처럼 눈에 훤한데 정작 눈앞에 펼쳐진 도로와 건물은 너무나 낯설었다. 십 년이면 변한다는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뀐 셈이니 그럴 수밖에. 목포에 들어서기 전 넘치던 자심감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내내 두리번거리며 차를 몰아 도심으로 들어갔다.

목포 북항과 바보 마당, 근대역사박물관

목포 북항 스카이워크.

첫째 날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북항이었다. 구 조선내화공장 우뚝 선 굴뚝과 그 너머로 북항 바다가 찰방찰방 물결을 내며 반겼다. 눈을 들어보니 해상케이블카가 바다를 가로질러 떠다녔다. 고소공포증이 심한 나는 케이블카는 그리 반갑지가 않다. 언젠가 통영 케이블카에 멋모르고 올랐다가 몹시 떨었던 공포가 아직도 남아있기에. 고하도가 마주 보이는 창 넓은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북항 근처에 드라마와 영화의 배경으로 유명한 서산동 바보마당(바다가 보이는 마당)이 있다. 산비탈에 붙은 집들이 소설 <1989 목포>의 배경과도 흡사해서 가슴 두근거리며 천천히 둘러봤다. 다닥다닥한 집들과 가파른 골목길이 일부러 보존된 건 아닐 테고, 도시개발의 바람이 비켜간 흔적 같아서 한편으로 마음이 아렸다. 이 골목 어딘가에는 내 소설 속 주인공과 희주가 아웅다웅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에 찾은 곳은 근대역사박물관이다. 일본영사관이던 건물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목포의 시작부터 근대사까지의 자료를 전시해놓은 역사적 공간이다. 과거 식민지 수탈의 아픔과 민족의 저항 역사를 기억하고자 일제강점기 때의 자료들을 보존해놓았다. 목포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생생한 자료가 많았다. 마치 시간여행을 떠나온 느낌이랄까. 박물관을 나서는데 가이드가 뒤편 방공호도 보고가라고 말했다. 조심스레 건물 뒤쪽으로 향했다. 태평양전쟁시기 공중폭격에 대비해서 피난 장소로 만든 인공동굴이었다. 한국인을 강제 동원하여 혹독하게 노동시키는 모습을 재현해놓아 마음이 아팠다.

목포 구시가지와 ‘밀물 카페’

밀물다방을 재해석한 ‘밀물카페’

둘째 날, 눈을 떠보니 눈이 내렸다. 밤새 바람소리가 심상찮더니 눈바람이었다. 여행길에 눈을 만나다니,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다. 일찍 유달산에 오르려던 내 계획은 접어야했다. 대신 차를 타고 유달산 아래 일주도로와 눈 내리는 목포 시가지를 천천히 달렸다. 내가 다녔던 목포여고와 낙원교회, 오래 전 자취방이던 골목을 찾아다녔다. 길은 서툴고 눈바람은 점점 세찼다.

한 시간 남짓 돌다가 차를 돌려 목포문화재거리로 왔다. 한산한 식당에 들어가 뜨끈한 닭개장으로 점심을 먹고 구도심 주변을 둘러봤다.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낡고 빛바랜 건물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모 국회의원의 투기의혹으로 시끌시끌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런 곳이 투기지역이라니! 믿거나 말거나이겠지만 솔직한 느낌은 폐허로 잊힌 낡고 구석진 모습이었다. 손닿으면 허물어질 것 같은 허술한 벽체와 주저앉을 듯한 지붕, 텅 빈 가게들, 인적 드문 도로에 눈발까지 날려 스산한 풍경을 연출했다. 아직도 이런저런 많은 말들이 떠돌지만 어쨌거나 이곳 구도심 주민들이 다 같이 잘 사는 모양으로 변화되길 바랐다.

추위에 떨다가 우연히 ‘밀물카페’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과거 목포예술가들의 공간이 ‘밀물다방’이었는데 이를 재해석하여 만든 카페라고 한다. 어쩐지 카페입구부터 분위기에 끌린다 했다. 목포를 소개한 책 한 권 펼쳐놓고 커피를 마시며 몸을 녹였다. 저녁이 되면서 눈발은 자꾸만 굵어졌다. 게스트하우스 창밖으로 날리는 눈을 보며 폭설에 며칠 발이 묶이는 상상도 해보았다. 그렇게 나의 2박3일 목포 여행은 펄펄 날리는 눈발에 소리도 없이 묻혀갔다.

/글=이진숙 작가.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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