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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가는 곳에 바람이 간다… 재앙을 쫓아내는 맹수

기사승인 [82호] 2022.01.09  20:5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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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의 왕이자 잡귀를 쫓는 영물
구차하지 않고 당당히 사는 존재

이야기 속 호랑이는 친근한 관계
사람에게 은혜 갚는 의로운 존재

민화에 나오는 호랑이는 길상동물
좋은 소식 들리고 나쁜 일은 가라

2022년 임인년(壬寅年) 범띠해를 맞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용맹함과 해학, 두려움의 상징 '호랑이'> 학술강연회가 열렸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2022년은 임인년(壬寅年) 호랑이 해다.

호랑이는 백수의 왕이자 잡귀를 쫓는 영물로 결코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존재이다. 형형한 눈빛에 온몸이 얼어붙고 묵중한 걸음걸이에 혼백이 흩어진다. 어흥~ 하는 포효는 간담을 서늘케 한다. 호랑이는 어릴 때부터 무서운 짐승으로 알아왔다.

호랑이하면 기억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어릴 때 울면 할머니와 어머니가 “호랑이 온다. 울음을 뚝 그쳐라”는 말을 자주 듣고 무서워했다. 호랑이라고 하면 어릴 때 들은 호랑이 담배이야기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면, 어른들은 으레 “옛날하고도 아주 오랜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울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이렇게 시작하곤 했다.

사실 호랑이는 담배를 피울 줄 모른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말할까?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한 호랑이가 늙어서 더 이상 사냥하기 힘들어지자 산속을 지나다니는 사람을 잡아먹으면서 살다가 갑자기 사람이 되었다. 그 호랑이는 마을로 내려와 벼슬아치로 행세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호랑이를 잡으러 다닌다는 사람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그는 옛날 친구였다. 정체가 드러날 상황이 되자, 벼슬아치는 친구에게 혹시 담배 있으면 달라고 했다. 이에 친구로부터 담배를 얻어 피우면서 자신의 신세를 불쌍하게 말해 위기를 벗어났다고 했다.

이 전설은 말도 되지 않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는 세상을 풍자한 것인데, 훗날 그 내용은 사라지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라는 말만 남아 ‘아주 오래전 세월’로 통하게 되었다. 오는 3월 9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전개되고 있는 여야 대통령 후보들의 언행과 주변상황이 비정상적이다. 바로 이 불합리한 일들이 세월이 흐르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로 이야기되지 않을까 싶다.

호랑이는 예전에는 ‘범’이라고 했다. ‘범도 제 말하면 온다’ ‘범 없는 골에 토끼가 스승이다’ ‘범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 등은 요즘 범 대신에 호랑이를 넣어 회자되지만 백년전 까지만 해도 범을 썼다. 호랑이는 범을 뜻하는 한자 ‘호(虎)’와 늑대(狼)를 묶어 호랑(虎狼)이라고 부르던 것이 어느덧 범을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지금은 ‘호랑이’에게 ‘범’이 밀려난 셈이다.

호랑이는 썩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말처럼 구차하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동물이었다. 호랑이는 동작이 민첩하다. 동물을 공격할 때 잔뜩 움츠렸다가 용수철 튀기듯이 빠르게 덮친다. 그 움직임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던지 중국의 ‘역경(易經)’이란 책에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고 기록되었다. ‘바람의 여신은 호랑이를 타고 다닌다’는 속설에서 유래하여 매우 빠른 동작을 의미하는 ‘비호같다’는 말이 생겨났다.

올해는 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의 해이다. 옛날 사람들은 호랑이가 악귀를 막아주는 신성한 동물이라 믿었다. 국립민속박물관에는 3월 1일까지 ‘호랑이 나라’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동화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용맹하지 않다. 팥죽 한 그릇 얻어먹으려다 할머니에게 혼 줄이 나고, 오누이를 잡아먹으려던 호랑이는 썩은 동아줄을 잡았다가 수수밭에 떨어진다. 그러고 보니 옛날 옛적 고작 쑥과 마늘 먹기 시합에서 곰에게도 졌다. 이야기 속 호랑이는 은혜 갚을 줄 아는 의로운 존재거나 때론 포악하고 어리석어 골탕을 먹는 친근한 동물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말엽까지만 해도 호랑이가 산에서 마을로 내려와 가축이나 사람을 해치기도 했다. 이렇게 호랑이에게 당하는 피해를 ‘호환(虎患)’이라 했으며, 매우 큰 골칫거리로 여겼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헌강왕 11년(885년) 2월 호랑이가 궁궐마당으로까지 뛰어 들어왔다고 했으며, 민가에 내려와서는 힘없는 어린이들을 주로 물어가 잡아먹었다.

그런데 이처럼 무서운 호환은 묘하게도 호랑이 부적신앙을 낳았다. 호랑이는 모든 짐승의 왕이므로 온갖 잡귀와 질병도 물리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에 따라 갖가지 방법의 부적이 만들어졌다. 호랑이부적은 바람·물·불에 의한 재난인 삼재(三災)를 쫓는다고 여겨졌고, 단오날 쑥으로 호랑이를 만들어 머리에 꽂거나 문에 매달아 놓는 애호(艾虎)는 잡귀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호랑이 발톱도 주술적 효과가 있었다. 호랑이 가죽은 가장 비싼 모피였다. 부잣집에서 딸을 시집보낼 때 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호피담요나 호피그림이 그려진 담요를 신부의 가마지붕에 얹어 액운을 방지하기도 하였다. 호랑이 뼈를 대문 앞에 걸어 놓으면 삿된 귀신이 접근하지 못한다고 여겼다.

부적신앙은 예술로도 승화되었다. ‘맹호도(猛虎圖)’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가 대표적이다. ‘맹호(猛虎)’란 사나운 범을 의미하는데서 짐작할 수 있듯, 맹호도는 오직 호랑이만을 그린 그림이다. 이때의 맹호는 정면을 노려보는 자세로 많이 그려진다. 보는 이로 하여금 섬뜩한 느낌을 들게 할 만큼 강한 눈빛이 맹호도의 생명이다. 호랑이의 가장 큰 특징은 상대를 제압하는 눈빛이다. 호랑이와 정면으로 맞부딪친 동물들은 대부분 최면에 걸린 듯 꼼짝하지 못한다. 눈빛이 강렬하고 무섭게 보여 상대를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맹호도는 바로 그 무서움을 그대로 그림에 옮긴 것이다.

이에 비해 송하맹호도는 호랑이의 강력한 위엄에 소나무의 상징까지 더한 그림이다. 송하맹호도는 액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호랑이가 지키고 있음을 뜻한다.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송하맹호도는 스승과 제자사이인 강세황과 김홍도가 함께 그렸다. 강세황은 소나무를, 김홍도는 호랑이를 맡아 그렸다는 매우 뛰어난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호랑이를 강력한 부적으로 여겨서 민화(民畵)의 소재로도 많이 다뤘다. 까치와 호랑이를 함께 그린 ‘작호도(鵲虎圖)’ 혹은 ‘호작도(虎鵲圖)’가 유행했다. 대개 늙은 소나무가 있고 소나무가지에는 까치 몇 마리가 앉아 있고, 그 아래 호랑이가 앉아 있는 모습이다. 민화(民畵)란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화가가 행운을 기원하며 그린 그림으로 감상하기 위한 미술품인 동시에 액운을 무리치는 실용적 부적이다. 민화에서 까치와 호랑이가 자주 다루어진 것은 길상 동물이기 때문이다. 까치는 좋은 소식을 알리는 길조로, 호랑이는 재앙을 쫓는 맹수로서 ‘좋은 소식만 들려오고 나쁜 일은 사라지라’는 희망을 표현한 것이다.

호랑이 중에서도 특별하게 대접받는 호랑이가 있다. 백호(白虎)이다. 몸빛이 흰 호랑이는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신처럼 숭배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라 하여 왕릉사신도에서 오른쪽을 맡은 수호자로 그려졌다. 옛날 사람들은 호랑이가 악귀를 막아주는 신성한 동물이라 믿었다. 흰 동물을 길조로 여긴 것은 신화적으로 흰색이 햇빛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주몽은 어머니 유화부인이 밝게 빛나는 햇빛을 받은 뒤 잉태하여 낳은 알에서 나온 사람인데, 흰색은 밝게 빛나는 햇빛을 의미한다. 흰색은 우리나라에서 청렴결백과 순수함을 의미하는 상징색으로 여겨졌기에 백호는 더욱 신성한 영물로 여겨졌다. 백호의 용맹성은 현재에도 이어져 우리나라 정예특공부대의 상징물이자 부대명칭(백호부대)으로 쓰이고 있다.

이철우 본지 회장 lc3434@naver.com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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