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거창사건, 산청·함양사건의 진정한 화해는 ‘특별법 제정’

기사승인 [78호] 2021.11.08  21:35:33

공유
default_news_ad2

1951년 2월 7일부터 11일까지
산청군·함양군에서 705명
거창군 신원면에서 719명 학살

공비토벌 ‘견벽청야’ 작전으로
무고한 민간인들 무참하게 희생

유족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배·보상 위한 특별법 마련해야

거창군 신원면 박산합동묘역에는 1961년 6월 군사정변으로 거창사건 유족회 간부 18명이 반국가단체혐의로 구속되고, 위령비는 정으로 지워져 땅에 파묻히는 수난을 당했다. 1988년 2월 15일 유족들은 27년 만에 땅 밑에 박힌 위령비는 파냈지만, 왜곡된 진실의 역사를 바로 알리기 위해 쓰러진 위령비를 그대로 두고 있다. 유족들은 “그건 분명히 정부에서 그 사람들 손으로 무덤 앞에 무릎 꿇고 다시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사진: 서부경남신문>

거창사건 및 산청·함양사건은 1951년 2월 9일부터 11일까지 거창군 신원면과 1951년 2월 7일 산청군 금서면, 함양군 휴천면·유림면 등 일원에서 공비토벌을 이유로 국군병력이 무고한 민간인을 희생시킨 사건을 말한다.

‘공비’ 토벌 전담 국군 제11사단(사단장 최덕신) 9연대(연대장 오익경) 3대대(대대장 한동석)는 2월 7일 산청군 금서면 가현, 방곡, 점촌, 자혜, 화계, 화상, 주상, 주암의 8개 마을과 함양군 유림면 서주, 손곡, 지곡의 3개 마을 705명을 학살하고, 2월 9일부터 11일까지 거창군 신원면 대현리, 중유리, 와룡리, 덕산리, 과정리 5개 마을 719명을 학살했다.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어가던 1951년 2월 초순 산청에 본부를 두고 있던 제11사단 9연대는 각급 지휘관들이 모인 가운데서 공비 토벌을 위한 작전회의를 열었다. 연대장 오익경은 사단 작전회의에서 대대장들에게 ‘견벽청야(堅壁淸野)’라는 기본 작전 개념을 전달했다.

견벽청야 작전이란 군청소재지 등 경제·통신·문화의 집중지를 확보하고 그 사이의 군 보급로를 확보하는 ‘견벽’에 해당하는 작전과 공비가 식량을 약탈하거나 인력과 건물을 이용할 수 없도록 산간벽촌을 철수시키는 것으로 ‘청야’에 해당하는 작전이다.

그러나 견벽청야 작전 개념은 공비들이 산간지방을 무대로 하고 있다는 것과 주민들의 도움 없이는 활동할 수 없다는 것을 최대한 이용한 작전이라, 지리산 등 공비들이 활동하는 산간벽지 지역은 거의가 청야작전의 대상이 된다. 이 작전은 중국의 항일전선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는 하지만 드넓은 대륙 위에 터전을 잡고 있는 중국과 국토의 70%가 산간지역인 한반도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더구나 넓은 평야가 드물어 농지로는 절반이 넘게 산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또한 당시 인민군 준동 지역인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태백산 등 전역에 펼쳐 있어 그 작전대로라면 남한 땅의 절반 가까운 농민들의 터전이 청야작전의 대상이 되며 실제로 그것은 경남 통영, 전남 함평, 전북 순창, 제주 등지에서 그렇게 행해졌다.

이 견벽청야의 작전 명령 각본에 따라 무고한 양민들을 공비와 내통했다고 ‘통비분자’로 규정, ‘산청·함양·거창 민간인학살사건’이 이뤄진 것이다. 국군 제11사단 9연대 3대대의 5일간 작전경로를 보면 산청·함양·거창사건이 일어난 곳은 다 같은 인접지역이었던 것이 드러난다.

제70주기 거창사건희생자 제33회 합동위령제 및 추모식. 거창사건은 한국전쟁 중 민간인 학살에 대한 전국 최초로 판결을 이끌어낸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다. 이날 행사는 거창사건유족회가 주최하고 거창군이 주관하여 진행했다. 윤병일 행정안전부 과거사지원단장, 육성철 청와대 사회통합비서관실 행정관, 구인모 거창군수, 김종두 거창군의회 의장, 도·군의원, 제주4·3, 노근리, 산청·함양유족회, 신원면 기관단체장, 유족 등 48명이 참석했다. <사진: 거창군>

70년 전 발생한 ‘산청·함양·거창 민간인학살사건’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발생한 비극적인 국가폭력의 전형이 되는 사건이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대가 무고한 민간인을 대상으로 잔혹한 토벌작전을 개시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무고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에 민간인 학살은 국제조약, 국제관습법, 국내법상으로 당연히 금지되었으며, 사건 직후 고등군법회의가 학살부대의 지휘관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는 사정을 보더라도 산청·함양·거창 민간인학살은 명백한 범죄행위였으며, 국가폭력이었음이 자명한 사실이다.

특히 거창사건이 발생한 후 바로 사건의 내막이 폭로되고, 국방장관의 해임과 책임자의 처벌(바로 이승만에 의해 사면·복권되었지만)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여타의 국가폭력으로 인한 민간인 학살사건과는 매우 다르다고 할 것이다.

거창사건은 1951년 12월 16일 대구고등법원 중앙고등군법회의에서 국가의 위법행위였음이 인정되었으나, 산청·함양사건은 오랫동안 조명되지 못하다가 1987년 민주화 이후에야 재조명되었다. 마침내 1996년 1월 5일 산청·함양사건과 거창사건을 하나로 묶어서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공포·시행됨으로써 명예회복의 길이 열렸다.

1998년 2월 17일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가 인정한 사망자만 거창 548명, 산청·함양 386명으로 전체 934명이 위원회에 접수됐다.

하지만 현재까지 국가는 자신들이 저지른 국가폭력에 대해 유족들과의 진실한 화해를 위한 실질적인 노력의 일환인 배·보상을 위한 특별법 개정에는 미적거리고 있다. 1989년 10월 17일, 2004년 3월 2일, 2004년 9월 7일부터 2009년 3월 5일까지, 2012년과 2016년, 2019년 6월 25일·9월 29일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배상 등에 관한 특별법안’이 계속 발의됐으나,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특별법 개정의 불발 과정을 보더라도 국가는 진정한 사과나 화해의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유족들의 열망을 무시해오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짓 화해보다 진실어린 화해다. 화해의 진정성을 담보하는 것이다.

최근 21대 국회에서는 2020년 12월 22일 김태호 의원 등 여야 의원 26명과 2021년 10월 27일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과 국민의힘 김태호·강민국 의원 등 여야 의원 25명이 공동으로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 전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산청·함양·거창 민간인학살사건 특별법 개정이 갖는 의미는 무엇보다 비로소 국가가 나서서 잘못된 국가폭력에 대해 사과하고 희생자와 유족, 지역민들의 한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법적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이다.

국가와 군대의 무분별한 폭력으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 희생자와 유족들의 돌이킬 수 없는 비참하고 힘겨웠던 삶에 공감하고 눈물을 씻겨내는 일에 우리 모두가 참여하고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특별법 개정의 궁극적 이유이기도 하다.

이재승 건국대 교수는 “거창사건 및 산청·함양사건이 국제법상 전쟁범죄와 인도에 반하는 죄를 구성하고 있으므로 국가가 이와 같은 국제법상의 범죄로 인해 야기된 피해를 배상할 의무를 진다”고 강조했다.

이성열 거창사건희생자유족회 회장은 “희생자와 유족들의 아픔은 국민 모두가 통감하고 짊어져야 할 책무라고 생각한다”며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유족들의 아픔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기를 희망하고, 제주4·3사건과 같이 배·보상에 관한 특별법이 조속히 마련될 수 있도록 모든 분들이 노력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민수호 전 산청·함양사건양민희생자유족회 수석부회장은 “대한민국 인권국가로서의 미래 화합 발전을 위해 관련 법안이 나왔지만 16대 국회부터 20대까지 자동폐기, 거부권 등으로 이어졌다”며 “21대 국회에서는 특별법 개정으로 산청·함양·거창 사건을 마무리하는 것이 화합의 출발점이 된다”고 밝혔다.

구인모 거창군수는 “역사를 기억하고, 진실을 밝혀 희생자를 위한 진정한 추모가 무엇인지 되짚어 볼 때”라며 “진정한 명예회복은 유족에 대한 배상이다”고 강조했다.

김태호 국회의원은 “거창사건 및 산청·함양사건이 일어난 지 70년이 지났지만 희생된 영혼과 유족의 상처는 아직도 치유되지 못하고 깊은 슬픔과 애통함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며 “희생자분들과 유족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관련 특별법이 하루 빨리 마련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제 국가는 진정어린 사과와 이를 보증하는 유족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더불어 그에 상응하는 실효적인 배·보상을 포함하는 특별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이같은 국가의 역할이 민주국가에 사는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것이며, 민주주의 척도이자 정점이라 할 수 있다.

견벽청야(堅壁淸野), 작전명령 제5호 부록의 내용

군이 꼭 지켜야 할 전략거점을 점령한 후 적군의 식량 및 인력, 물자확보를 차단하기 위해 산간벽촌의 물자를 옮기고 가옥을 파괴하는 작전이다. 그러나 견벽청야 작전명령 제5호 부록에는 이외에도 적의 손에 있는 사람을 총살할 것을 명령했다.

1. 적의 손에 있는 사람은 전원 총살하라

2. 식량가옥을 확보하라

3. 기도를 은닉하기 위하여 총성을 내지 말라

4. 동상을 예방하라

5. 소화절차를 철저히 하라

6. 낙오자 처치는 신속 신중히 하라

 

이영철 기자 achimstory@hanmail.net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