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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옷장

기사승인 [77호] 2021.10.25  13: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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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희 수필가, 소나무5길문학회 회원.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와 면회가 허용되었다. 마스크와 일회용장갑을 껴야했고 허락된 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다. 어머니가 휠체어를 타고 면회실에 들어섰다. 그동안 염색을 안 해서 백발이 된 모습이 낯설었다. 호리호리한 체형에 늘 당당하신 모습은 사라지고 눈빛 초점도 흐렸다. 서로가 마스크와 장갑을 낀 채 손을 맞잡고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의 일이다. 하루는 어머니 집에 갔는데 어머니가 안방 문갑에 있던 물건들을 끄집어놓고 계셨다. 하루에도 몇 번씩은 장롱 안과 문갑을 정리하던 어머니께서 갑자기 내게 장롱 문을 열라고 하셨다. 열어드렸더니 “네가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챙겨가라”고 하셨다. 옷장 안은 어머니께서 매일 정리한 탓인지 백화점 매장처럼 깔끔했다. 사계절 옷들이 유행이 지나긴 해도 금방 입고 외출할 정도로 깨끗하고 세련되었다. 옷장 속 다양한 디자인의 옷들을 보자 문득, 여든일곱 해 어머니의 삶이 곱게 쟁여져 있는 듯했다.

1934년생인 어머니는 예전 사람치고는 167㎝라는 큰 키였다. 처녀 적에는 큰 키가 스트레스였단다. 어딜 가나 눈에 뜨이고 이목이 집중되어 그게 싫었다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내가 어릴 때도 ‘제발 우리 딸은 키가 크면 안 될 텐데…’하고 바랐다고 한다.

어머니 젊었을 때는 제법 멋쟁이셨다. 외출할 때 곱게 화장을 하고 예쁘게 치장을 하고 나서면 동네사람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쳐다보기도 했다. 어머니는 ‘밥 한 끼 굶는 것은 남들이 모르지만 옷을 추레하게 입으면 남들이 얕잡아 본다’고 자주 말하셨다.

기억나는 사진이 있다. 어머니가 친목모임에서 제주도로 놀러 갔을 때 일이다. 당시 제주공항은 지금처럼 현대식건물을 짓기 전이었다. 일행 중 멋쟁이 네 명이 공항 문을 나서는 순간, 공항에 주둔하는 사진사가 허락도 없이 얼른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가져온 사진 속 어머니와 친구 분의 모습은 지금 보아도 영화배우 같았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사치만 하고 살림을 돌보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건 큰 오산이다. 끈임 없이 자신을 가꾸면서도 주변이나 시댁인 큰집에도 정성껏 챙기셨다. 자존심이 강하고 맡은 일은 끝까지 추진했고 어디서나 조리 있고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셨다. 친구 분들 사이에 ‘변호사’라는 별명도 얻었다. 무슨 일을 하시던 손끝이 매섭고 야무졌기에 ‘팔방미인’이라는 소리도 참 많이 들으셨다.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던 어머니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어머니 성격을 쏙 빼닮고 애교 많던 막내아들의 죽음과 이어 십여 년 후에 들려온 큰 아들의 비보는 어머니의 양 날개를 꺾고 말았다. 그래도 별다른 내색도 없고 항상 굳건하셨기에 나는 어머니가 대단하신 분이라고 믿었다. 간간히 아들 생각에 한밤중에 잠들지 못하고 바깥으로 뛰쳐나가서 집 앞을 이리저리 다닌다는 말에 그저 위로만 드렸을 뿐이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어머니의 속이 문드러지고 갈기갈기 찢겨진 것을…. 자식을 먼저 보낸 그 아픔과 스트레스를 상상조차 못한 나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이삼 년 전부터 치매초기 증상을 보이던 어머니를 주말이면 우리집으로 모시고 왔다. 어느 날인가, 의자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폭풍 질문을 해댔다. “댁은 누구요? 나와는 무슨 관계요?” “··· ···.” “여기는 어디요? 내가 어떻게 여기로 왔소.” 딸을 처음으로 알아보지 못하는 증상에 당황했다. 혹시 농담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어머니의 눈빛은 진지하고 심각했다. 차근차근 대답을 해드렸더니 “아하! 내 딸이구나 내게도 딸이 있었구나” 너무나 기가 차고 억장이 무너졌다.

요양병원에서 만난 어머니는 다행히 딸을 알아보신다. “잘 있다. 세 끼 따뜻한 밥도 잘 나와 잘 먹고 있다. 걱정 말아라” 그런 말씀만 남기고 10분의 면회시간은 끝났다. 백발에 환자복을 입은 어머니를 뵈니 친정집 옷장 안에 주인을 기다리는 옷들이 떠올랐다. 언제쯤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4층 병동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 어머니는 희미하게 웃으셨고 이내 문이 닫혔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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