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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한 방울 참깨 한 알

기사승인 [76호] 2021.10.13  16:5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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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 산청군 석대마을 거주.

참깨가 참 좋네! 직접 농사지었어요?

기름향이 다르네. 정말 진하다.

엄마의 참깨를 들고 가면 방앗간 주인장과 손님들에게 듣는 말이다. 올해도 등 뒤로 쏟아지는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방앗간을 나왔다. 갓 내려 따뜻한 참기름병을 꼭 끌어안았다. 고소한 참기름향이 코끝을 지나 머릿속 깊게 박히는 듯 했다.

해마다 추석이면 가까운 지인들에게 엄마의 참기름을 선물한다. 이제는 그들도 은근 기다리는 눈치다. 선물용으로 구입한 빈병을 씻어 뜨거운 물을 부어 소독하고 병이 뜨거워지면 물을 비우고 툭툭 털어 바로 세워두면 열기와 함께 물기가 금세 마른다. 예전 같으면 찌꺼기를 이틀정도 충분히 가라앉히고 맑은 참기름만 병에 옮겨 담았는데 올해는 그냥 담았다.

엄마가 참깨농사 종료를 선언하셨다.

팔십을 앞둔 엄마는 시집온 후부터 한해도 거르지 않고 참깨농사를 지으셨다. 문중 산을 일궈 만든 탓에 돌 반 흙 반인 그곳에서 삶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셨다. 몇 해 전부터 몸 여기저기 아파와 병원 신세가 잦아지면서 자식들은 농사를 그만 하시라 말렸다. 이제는 못 하겠다 하면서도 마늘, 양파는 기본이고 참깨를 심고 거두어 흩어져 사는 자식들에게 나눠 보냈다. 남는 건 팔아서 용돈도 하시더니 올해는 정말 힘이 부치시는가 보다.

며칠 전 언니와 고향에 다녀왔다. 갑자기 방문한 딸들이 반가우면서도 고질병이 된 어깨통증으로 참깨에 섞인 검불을 거르지 못했다며 안절부절 못하셨다. 저번 왔을 때보다 허리가 더 굽어 일어나고 앉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우리는 엄마의 지휘를 받으며 참깨선별에 들어갔다. 매트를 펼쳐 깔고 한쪽 끝에 선풍기를 놨다. 참깨가 날리지 않을 만큼 바람을 약하게 틀고 참깨를 한바가지 담아 그 앞에서 떨어뜨리면 가벼운 검불은 날려 매트 밖으로 나가고 참깨는 아래로 떨어진다. 그 작업을 반복하면서 선풍기 가까운 곳에 쌓여가는 하얀 참깨만 골라 담아갔다. 잠깐의 작업에 뻐근해진 어깨를 주무르면서 몇 년 전 엄마 어깨를 수술했던 의사의 말이 생각났다. ‘어머니 어깨 힘줄이 삭은 밧줄처럼 너덜너덜한 상태입니다.’

“인자는 못하겠다. 올해가 마지막이여.”

목소리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엄마, 걱정 마. 이제 내가 참깨랑 마늘이랑 농사지어서 보내줄게요.”

큰소리를 쳤지만 귀농 10년이 넘었는데도 농사실력은 제자리걸음이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비설거지를 하려 마당에 나갔다.

올해도 텃밭은 포기한지 오래다. 토마토는 잡초와 엉켜 바닥을 기고 있고, 옥수수는 고라니가 모조리 먹어 치웠다. 고라니가 먹다 만 옥수수 두 개가 쓰러진 옥수수대에서 까맣게 익어가고 있었다. 잘하면 내년 종자는 될 것 같아 꺾어 담았다. 당근과 김장 무를 심은 자리는 길냥이들이 볼일을 보느라 여기저기 파헤쳐 있었다. 듬성듬성 올라온 당근과 무 떡잎들이 고꾸라져서는 올해도 그냥 사서 먹으라고 작별인사를 한다. 그나마 쪽파가 삐죽삐죽 생존신고를 하고 틈틈이 잡초를 잡아준 고추가 빨갛게 매달려 있었다. 잠깐 땄는데 바가지가 가득하다.

돌아서는데 풀숲 가운데 내 키보다 큰 참깨가 우뚝 서 있다. 늦봄 뿌렸던 참깨가 몇 포기 살아 몇 개는 내 키보다 크고 몇몇은 허리만큼 자라 있었고 나머지는 풀에 치어 누워있었다. 아래쪽 꼬투리가 익어 벌어져서는 하얀 참깨가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위태로웠다. 고추 바가지를 풀숲에 던져두고 창고로 뛰어가 낫을 찾아 왔다. 참깨를 베어낼 때마다 후두둑 참깨가 쏟아졌다.

‘깨는 맨 아래 꼬투리가 익을 즈음 베어서 묵어가꼬 똑바로 세워놔야재. 그라믄 나중에 마르면서 익어야.’

잘못을 들킨 아이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인자 진짜로 못해야. 요것이 마지막이어야.’

쪼그려 앉아 떨어진 참깨를 한 알 한 알 손바닥에 주워 담았다. 이마에서 맺혔던 땀이 볼을 타고 턱밑에 매달렸다 뚝 떨어진다. 태풍은 어디쯤 오고 있는지…, 머리 위로 가을볕이 따갑게 쏟아지고 있었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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