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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만마을 이야기

기사승인 [72호] 2021.08.02  13: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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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숙 산청군 단성면 구만마을.

산청군 단성면 구만마을로 귀촌을 했다.

구만마을은 내가 태어난 곳이고 부모님의 고향이다. 나는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구만마을을 떠났다가 60여년 만에 다시 들어왔다. 30여년 서울생활을 하는 동안 늘 전원생활을 꿈꾸며 살아왔다. 나는 유독 화단 가꾸기를 좋아해서 서울 아파트에 살 때도 화단을 사용할 수 있는 1층만 고집했었다.

서울 가까운 양평이나 경기도를 수없이 돌아다니며 내가 살 집을 찾아 다녔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그 즈음 친정어머니께서 쭉 비워 놓은 시골집을 정리하려고 하셨다. 당시 어머니는 서울에서 아들과 함께 2년 정도 생활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생전에 지은 고향집을 다른 누군가에게 팔고 싶지 않았고 은근히 우리가 맡아 주기를 원하는 눈치셨다.

고향은 서울과 너무 멀고 아직 남편이 일선에서 일하던 때라서 결정이 쉽지는 않았다. 남편과 의논 끝에 우리는 어머니께 용돈을 드린다는 마음으로 고향집에 한 달에 두어 번 다녀가며 집을 관리하기로 했다.

어머니는 서울 생활을 점점 불편해하셨다. 마침 아이들 공부를 마친 올케가 입국하게 되어 어머니는 고향으로 가기를 원하셨다. 우리 부부는 또다시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결국 고향에서 한 1년만 살아보기로 하고 코로나19로 세상이 시끄럽던 무렵 구만마을로 내려왔다.

산 좋고 물 맑은 ‘산청’에 우리는 빠르게 정이 들어갔다. 고향집을 리모델링하고 텃밭 대신 정원을 꾸몄으며 채소 대신 꽃을 심었다. 동네어르신들은 꽃을 키우면 먹을게 나오냐며 놀리셨다.

구만마을엔 시어머니가 아홉이다. 바로 앞집은 어머니와 동갑인 남사댁이 사는데 내가 태어난 집이기도 하다. 아랫집 딸기언니는 농협에 근무하다 퇴직하고 딸기하우스를 하면서 큰 수확을 올린다고 들었다. 골목 끝 모퉁이를 돌면 파란 대문이 있다, 그 집에는 우리와 먼 친척인 시천댁이 살고 있다. 동네마다 소식통이 꼭 있게 마련이다. 시천댁이 그런 사람이다. 동네 방송국이라 해도 될 만큼 소식을 잘 전해줘서 어머니는 부러 멀리 가지 않아도 동네 소식을 접할 수 있다.

동네에 모두 어르신들뿐이지만 딱 한 집은 그나마 우리랑 나이가 비슷한 부부가 산다. 부산에서 식당을 하다가 귀촌했는데 마을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지낸다. 땅 한 평 없으면서 동네에 노는 땅을 부지런히 가꾸어 가을이면 먹거리를 제일 많이 수확하는 재주꾼이다. 그 옆집은 큰아버님이 살던 곳인데 지금은 다른 분이 살고 있다. 그 분은 트럭으로 고물을 모으며 농사도 짓고 참 열심히 산다. 마을 꼭대기에는 돼지 축사가 있다. 축사 가는 길목 맨 마지막 집은 고종사촌 오라버니 집이 있다. 원래는 고모님댁이었지만 두 분이 돌아가시고 큰아들인 오빠가 물려받아 관리하는 중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는 우리 동네사람들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누가 누군지 아직은 잘 모른다. 반상회나 마을모임이 있으면 남편이 나가서 바깥일을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음 모임에는 나도 따라나서 봐야겠다.

올해는 화단이 제법 어우러지려고 한다. 수없이 반복되는 실패의 정원이지만 천천히 가꾸다보면 환해질 것이다. 오늘도 내 고향 구만마을에서 소소한 행복을 키우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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