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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살리는 173가지 ‘천염염색’ 찾은, 산청 풀꽃누리

기사승인 [71호] 2021.07.16  21: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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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문헌탐구 13년 연구 끝 결실
화학약품 전형 없는 친환경 소재
환경운동가 어머니 이어 2대째
남산예담촌서 ‘산청 173’ 운영

산청군 시천면에 위치한 천연염색 공방 ‘풀꽃누리’가 13년간의 연구 끝에 옛 문헌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세상의 모든 색’ 173가지를 찾았다. <사진: 산청군>

무지개가 눈앞에 내려앉으면 이런 느낌일까. 한여름을 향해 가는 따스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색색의 긴 천이 나부끼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세상에 슬로우 모션이 걸려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그 중에서도 하늘을 꼭 닮은 쪽빛 천자락은 그 색이 쉬이 잊혀지지 않는다. 쪽빛 천을 손끝에 걸고 눈을 감으니 하늘로 둥실 떠오르는 기분이다.

자연이 선물한 동백나무와 소나무, 홍화와 소목, 오리나무와 도토리껍질, 콩대와 굴껍질, 마당 앞 매실나무에서 난 소출로 담근 식초와 손수 만든 술·조청이 눈앞에 있는 천연염색 천을 만드는 재료라니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재료부터 완성까지. 화학약품이 전혀 첨가되지 않은, 지구를 살리는 친환경 천연염색 사업체 산청 ‘풀꽃누리 주식회사’의 첫인상이다.

천연염색을 만들고 있는 박영진·김옥순 대표.

13년 시행착오 끝에 찾은 173가지 전통색

산청군 시천면에 천연염색 공방 ‘풀꽃누리 주식회사’를 두고 단성면 남사예담촌에서 ‘순이진이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박영진(50)·김옥순(51) 부부 대표.

부부는 옛 문헌에 전해지는 전통방식을 그대로 따라 스카프와 손수건, 컵받침 등 비교적 단순한 제품에서부터 손가방과 침구류, 생활복 등 다채로운 천연염색 제품을 만들고 있다.

박영진 대표가 천연염색에 뛰어든 것은 환경운동가였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그의 어머니는 환경운동가로 활발히 활동했던 젊은 시절 염색공장이 밀집해 있는 공단에서 폐수가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보고 삶 전체를 친환경으로 바꿔 나가셨다고 한다.

가장 먼저 실천한 일이 자신의 옷부터 천연염색한 옷으로 입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성철스님 생가가 있는 겁외사 인근에서 황토와 숯 등을 활용해 본격적인 천연염색업을 시작했다.

그러다 잠시 직장을 쉬고 있던 박영진 대표가 어머니의 일도 도울 겸 천연염색을 배우게 되고, 그것이 평생의 업이 됐다. 덩달아 아내 김옥순씨 역시 천연염색의 길을 함께 걷게 됐다.

이때가 1999년이었다. 마음은 먹었지만 이왕 시작한 일 제대로 해 보겠다고 배움을 얻으러 다닌 천연염색공방은 자신과 어머니의 가치에 부합하지 못했다.

대부분 발색이 어렵다거나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화학약품으로 된 매염제(옷감과 연료를 결합시켜 발색하도록 만드는 매개 약제)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동의보감’은 물론 조선시대 백과사전인 ‘이수신편’ ‘규합총서’ ‘산림경제’ 등 옛 문헌을 찾기 시작했다. 동시에 문헌에 나온 전통 염료 재료를 찾아 전국을 누볐다.

염료가 있어도 천에 그 색을 입히는 일은 또 다른 고난의 연속이었다. 가장 고민이 많았던 것은 색을 낼 때 꼭 필요한 매염제를 구하는 일이었다.

백반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약국을 찾았지만 백반 역시 화학약품으로 만든 것이었단다. 문헌을 뒤져 공부를 하다보니 동백나무를 태워 얻은 잿물로 매염제 성분을 얻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동백나무를 구하러 통영까지 갔다.

지리산 곳곳에서 나는 한약재는 훌륭한 천연 염제였다. 그 뿐이랴. 갤러리 앞마당에 있는 수백년 된 매화나무의 매실을 얻어 식초를 담가 염색에 썼다.

그렇게 13년을 색을 찾고 입히는데 몰두했다. 그 시간동안 찾아내고 만들어낸 색이 173가지였다. 옛 문헌에서 전해 내려오는 ‘세상의 모든 색’이었다.

남사예담촌 풀꽃누리 순이진이 갤러리.

문체부·관광公 선정 전국 ‘으뜸 관광두레’ 선정

선조들이 남긴 전통방식으로 173가지에 달하는 색을 찾고 입히는 방법을 체득했지만 여전히 천연염색은 고되고 지난한 작업이다.

염색의 가장 기본이 된다는 쪽빛 염료 만들기 하나만 해도 1년을 훌쩍 넘는 시간이 소요된다. 모든 재료를 자연에서 얻다보니 4계절에 맞춰 재료를 구하고 또 염료로 만드는데 시간과 품이 많이 든다.

이러한 정성과 노력은 차츰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있다. 2011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선정, 2013년 (사)한국전통염색협회 전통염색체험 장인 취득, 2017년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수상, 2018년 통도사 서운암 천연염색축제 운영위원장 등 풀꽃누리가 걸어온 길은 천연염색 그 자체다.

최근에는 대중속으로 가까이 들어가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풀꽃누리’는 지난 2019년 문체부 공모에 선정돼 관광두레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21년 2월에는 전국의 관광두레 주민 사업체 가운데 우수한 주민사업체를 집중 육성하는 ‘관광두레 으뜸두레’에도 선정됐다.

남사예담촌 풀꽃누리 순이진이 갤러리 전시작품.

박영진·김옥순 부부 대표는 옛 문헌에서 전해 내려오는 ‘173가지 세상의 모든 색’을 구현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산청173’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뜻을 같이하는 지역민들과 함께 주식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전통 한옥과 문화재로 지정된 옛 담장이 잘 어우러진 남사예담촌에서 천연염색 체험과 전통 공예품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지역사회와 함께 ‘지구를 살리는 착한 천연염색’을 널리 알리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수년 전부터는 산청천연염색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매년 함께 만든 작품을 동의보감촌과 남사예담촌 등에서 전시, 전통 천연염색 기법이 주는 자연의 미를 대중화하고 있다.

박영진·김순옥 대표는 천연염색과 남사예담촌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남사예담촌 전체가 전시·체험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밝혔다.

박 대표는 “우리 남사예담촌에는 천연염색연구가인 저를 비롯해 기산 박헌봉 선생의 제자이신 최종실 명인, 산수화의 대가이신 이호신 화백, 남사예담촌이 너무 좋아 산청으로 귀촌한 한의사 등 풍부한 인적자원이 있다”며 “여기에 문화재이자 지금도 한옥 민박으로 이용되고 있는 사양정사 등 전통고택, 마을주민들이 운영 중인 한방약초 족욕체험과 한복입기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 우수한 전시·체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전통 한약제는 대부분 우수한 천연염제다. 그렇기에 수많은 약초가 자생하는 지리산 자락 산청군은 염제를 구하기에 최적지”라며 “이처럼 우수한 지리적 여건에 천연염색을 배우고자 하는 인적자원이 더해진다면 전통 천연염색 대중화에 큰 힘이 되리라 믿는다”라고 덧붙였다.

이야기를 마무리 하며 잠시 갤러리를 둘러본다. 소탈하지만 손에 닿는 느낌이 좋은 전통 찻그릇에 따스한 차 한잔을 내려 주는 두 사람의 손에 눈길이 간다.

하늘을 닮은 색을 만들어내는 짙푸른 염료가 손과 손톱 곳곳에 물들어 있다. 쪽빛보다도 자못 아름다운 모습이다.

/글·사진=산청군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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