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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을 잘하는 사람이 큰일도 소신껏 해결할 수 있어”

기사승인 [51호] 2020.09.19  13: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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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동서 전 함양군 도시환경과장, 휴천면장

나는 업무에 ‘혼’을 쏟았다
언제나 중요하다는 생각에
헌신하고 또 최선을 다했다

길을 걸을 땐 직진이었는데
돌아보면 굽어진 길의
연속인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래도 바른 길을 걸어가야
훗날 보람과 만족을 느끼니
공직은 해볼 만한 직업이다

박동서 전 함양군 도시환경과장이 공직을 떠나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박 전 과장은 “공직은 해볼 만한 직업, 보람을 느끼는 직업이었다고 얘기하는 후배들이 많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고 말했다

나의 39년 5개월간의 공무원 생활은 전환기적 변화의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희망과 낙담, 용기와 좌절, 책임과 의무라는 갈등 속에서 적지 않은 시련을 겪었다. 내가 공무원을 시작할 때의 근무환경은 당시 나라의 형편을 그대로 반영하여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주요 행정사무기기가 지금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가리방, 철필, 파라핀 원지, 등사기, 로울러 잉크, 주판 등이었다.

일제 압제에서 해방된 우리나라가 6·25전쟁과 보릿고개라는 극심한 경제난을 극복하고 경제대국으로 성장 발전하는데 공무원들이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잘 살게 된 것은 우리국민 모두가 합심하여 이루어낸 결과지만 공직자의 역할 또한 적지 않았다.

면서기에서 본청 과장까지 두루 근무하면서 지방행정 전반을 두루 경험하였다. 공직생활을 회상해보면 한주먹 움켜진 모래가 손가락 틈새로 빠져나가고 손바닥에 붙어있는 몇 안 되는 모래알처럼 오롯이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가족들과 함께 눈쌓인 겨울 북덕유산 향적봉에 올랐다.

나는 1974년 11월 경상남도 공채시험을 거쳐 이듬해 1월 의령군에 첫 발령받아 공직에 입문하였다. 처음 맡은 산업계의 신규 공무원의 일상은 비포장 국도변에 위치한 양수기 창고관리로 시작되었다. 먼지 때문에 비닐은 덮어 두었지만 양수기와 엔진 그리고 호스를 매일 닦는 것이 주 업무였다. 이유는 모르지만 당시 양수장비와 집수정 등 한해대책 관련 업무는 군부대에서 확인하였는데 이곳 들판의 집수정은 어찌 그렇게도 많은지, 기계도 잘 모르던 시절 양수기 엔진을 돌리다가 손잡이에 턱을 맞는 것도 다반수고, 시동중인 엔진오일 뚜껑을 모르고 열어 엔진오일 범벅이 되었던 일은 아직도 뚜렷이 기억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주창하신 잘 살아보자는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 재배면적 확대 홍보에 열을 올렸다. 통일벼는 일반벼 보다 수확량은 많으나 일반벼 보다 먹기가 껄끄러워 기피하였다. 정부에서는 식량 확대를 위해 행정기관을 동원하여 통일벼 재배를 독려하던 시기였다. 담당마을의 모판 골재 및 비닐 확인은 물론 시·군 시·도간 통일벼 모판 전수확인을 통한 통일벼 확대재배는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자족에 보탬이 되었다고 감히 자부해 본다.

오지의 통일벼 확대재배를 위하여 면의 산림사법경찰이 당시 농가의 주 연료인 갈비(불쏘시개:소나무의 마른 잎)와 소나무 가지(갈비를 가져올 때 필요)의 불법 채취를 무마하여 주는 조건하에 통일벼를 재배토록 하는 등으로 오지에 전면 재배하여 일계급 특진했던 일도 실제 있었다.

산악회원들과 지리산 만복대에서.

당시 직접 겪은 지록위마(指鹿爲馬)같은 일화가 있다. 통일벼 재배를 위한 모판 설치면적 시·군간 교체 조사요원으로 차출되어 우리군과 교체 전수조사 대상이었던 함안군의 어느 면에 갔다. 그 면에서는 통일벼 모판을 많이 설치한 것으로 인정받기 위해 조사공무원인 우리들을 이용하려고 자기들끼리 짜고 일반벼를 통일벼라고 한사코 우겼다. 나는 할 수없이 주변들에서 일하고 있던 농부에게 도움을 청했다. 모르는 척 하고 “이 모판의 벼가 무슨 벼죠?”라고 물었더니 그는 우리를 보며 통일벼와 일반벼도 모르냐고 핀잔을 주며 일반벼라고 알려 주던 일이 있었다.

현장에 있던 면장 등 공무원들은 내가 보는 앞에서 일반벼를 알려 준 그를 향해 “당신이 뭐 그리 똑똑하냐”며 질책하는 것을 보고 씁쓸함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또 퇴비증산(거울이라고 함)과 보리 확대재배를 위한 보리밭 밟기는 물론, 보리재배 면적보고에 따른 시·군 또는 시·도 간 교체 확인을 대비한 현황별 도면작성 등으로 그때는 고달팠지만 그 시책 또한 식량 자급자족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확신한다.

독일 여행지에서 기념촬영.

나름대로 보람 있었다고 생각되는 업무 중에는 기술직이 아닌 일반직으로서 대전~진주 및 대구~광주간 고속도로는 물론 국·지방도 도시계획도로 등에 편입되는 용지보상업무를 폭넓게 담당하여 1995년 대전-진주간 고속도로 건설공사를 시점으로 전 지방도 공사를 할 때 실농보상을 지급하는 계기를 마련한 일로 기억된다.

공직자는 뭐니 뭐니 해도 승진할 때가 기분 좋다. 승진만큼은 아니지만 뜻 깊었다고 생각되는 일은 행정자치부(당시는 내무부)에 근무하면서 타부서 위탁업무인 외국인 관리 유공으로 법무부장관의 상을 받은 일로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 관직의 장은 요즘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백전면장으로 근무한지 일 년이 지나 내심 이동을 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면민 대표들이 군수에게 면장을 좀 더 근무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여 오래 근무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

흔히 공무원은 영혼이 없는 사람이란 말이 떠돌던 적이 있다. 위에서 시킨 대로 한다는 것을 빗댄 말이다. 그러나 공무원은 지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주어진 자리에서 공익을 생각하며 업무처리를 하게 마련이다. 근무시절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군민 모두가 기억하고 있을 ‘한들양귀비꽃축제’ 이전 군의 담당계장으로서 축제 대상농지에 대한 임대료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다방면으로 검토하였으나, 지원을 할 수 없어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민간투자로 임대료를 지급하면서 축제를 하였지만 준비과정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 때 축제관계로 지금도 소원한 당시 민간사장님께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또한 오지개발사업으로 시공한 불량교량을 해체 후 재시공한 일도 새삼 생각난다.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한 것이 있다. 일선 공무원의 업무는 매년 반복되는 루틴화된 일이 대부분이다. 내가 담당했던 업무의 SOP(행정업무처리절차)를 만들어 후배공무원들에게 남겨주고 싶었다. 그러나 인터넷이 발달된 시대에 그럴 필요가 있겠나 싶어 그만 두었다. 쌍둥이도 세대 차이를 느낀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로 변화가 빠른 격변의 시대이다. 30~40년 전의 경험을 가진 X세대 꼰대가 Z밀레니언 세대들이 상상할 수도, 상상 되지도 않는 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만 두었는데,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친구들과 일본 규슈 여행.

나는 업무에 혼을 쏟았다. 말단 9급 공무원이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해도 얼마나 비중 있는 업무였을까 만은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작은 일을 잘하는 사람이 큰일도 잘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맡은 일에 헌신하고 최선을 다했다.

공직생활을 회고해볼 수 있는 기회에 ‘소신만이 해결책이다’라는 나의 공직관과 공직자의 의무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진 것은 유익이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선공후사정신으로 사리사욕 없이 성실히 공직에 임한 결과 명예롭게 공직을 마감할 수 있었으니 나름대로 공직자의 바른길을 걷지 않았나 하고 감히 생각해 본다.

길을 걸을 때는 직진이라 여겼는데 돌아보면 굽어진 길의 연속인 경우가 많다. 굽어진 길을 걸어온 내가 후배들에게 반듯이 가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공직자 중 훗날 공직은 해볼 만한 직업, 보람을 느끼는 직업이었다고 얘기하는 후배들이 많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공직을 떠나 지금 농업에 종사하면서 점차 농업인들의 삶을 일부라도 헤아려 가고 있는 과정이다. 공직생활시 눈, 비 또는 요즘처럼 태풍 등이 내습할 때면 비상근무에서 복구 시까지 그 업무가 연속·체계적으로 이어지지만 공직을 떠나 농업에 종사해도 이 또한 만만치 않다. 비가와도, 아니 제때에 오지 않아도 매사에 근심 걱정이 떠나지 않으니 말이다. 지면을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한다.

이철우 본지 회장 lc34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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