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산청군청소년복지상담센터. |
“아요~” 남편이 나를 부르는 소리다.
“와요?‘ 내가 대답했다.
“이리 와서 함 볼래?” 남편의 눈웃음이 가리키는 곳, ‘호박구디’였다.
한 놈, 두식이, 석 삼, 너구리, 달팽이, 육개장 정확하게 세 구디에 두 포기씩 여섯 포기의 호박모종이 까칠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 마눌님~ 올해는 처행들이랑 호박잎쌈 마이 싸묵고 우지마라이. 내가 잘몬했다이’ 하고 덧붙인다.
20여년 동안 홀로지내시던 아버지마저 이태 전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친정집 가까이 살던 우리 부부는 졸지에 ‘친정텃밭지기’에 남겨진 고양이 돌봄 ‘집사’노릇까지 하게 되었다. 텃밭이라 해봐야 70평 남짓 뒷마당, 거창하게 ‘금성띠기 남새밭’이라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엄마 생전 택호가 금성댁이었다.
아무튼 지난해 농사 목표는 상추, 고추, 가지 그리고 방울토마토와 대망의 호박 가꾸기, 좀 더 자세히 표현하자면 ‘쌈 싸 먹을 호박잎 가꾸기’였다. 인터넷 검색을 영농안내 삼아 4월 어느 주말부터 모종을 사다 심으면서 주말이면 들여다보는 재미도 나름 있었고 남편의 부지런 덕분인지 상추 고추는 그냥저냥 지인들과 나눌 정도도 되었다.
더위가 한창이던 어느날, 모처럼 6남매가 친정집서 휴식시간을 갖게 되었고, 우리내외 농사실력 자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우리 6남매 대부분 엄마 식성을 닮아 쌈 종류를 그렇게 좋아하고, 특히 여름철 찐 호박잎에 땡초 숭덩숭덩 썰어 참기름 적당히 곁들인 고추간장 한 종지만 있으면, 옆 사람이 ‘배 마이 고팠는갑네’ 할 정도로 달려들 드니, 호박잎 가꾸기는 내가 생각해도 꽤 괜찮은 계획이었다.
그런데 사달이 났다.
“아이고 우짜노! 딱 울옴마 젖가슴이다. 아이고~”
호박줄기와 마주한 큰언니가 이렇게 외치고 풀썩 주저앉았다.
“옴마야! 진짜 우찌 이리 우리엄마 것노?” 작은언니 말이다.
“아유~ 뭐 한다꼬 열매는 이리 마이 품었노? 딱 우리네!”
막내언니다.
그랬다. 심기만하면 주렁주렁 호박이 절로 자라 누렁탱이 되고, 여름한철 호박잎을 맛나게 따 먹을 줄 알았다. 아뿔싸, 당혹스러웠다. 진녹 커다란 호박잎에 몽골몽골 애호박들을 기대했었건만, 오뉴월 깡마른 땡볕아래 삐쩍 마른 삭정이 줄기, 애기 손 크기를 면한 잎이 생기마저 잃어가는 현실과 마주한 것이다. 지나는 행인이라도 있어 맥락 없이 징징 짜는 아지매들을 봤다면 가관이었을 것이다.
생전 42㎏을 넘지 못하던 몸, 아버지 구닥다리 넥타이로 일바지 허리를 볼끈 짜매 ‘허리심’을 줘야만 그나마 허리가 펴져 집안일 건사가 된다셨던 엄마, 그런 엄마는 6남매를 어찌나 악착스레 품고 살찌워 한결같이 허연 살집으로 다이어트 걱정하게 하셨던지…, 그토록 깡마른 품으로…. 그리고 그날, 기대는 딴판이었으나 엄마에 대한 애도 덕택인지 우리는 먹지도 못한 호박잎쌈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 알게 된 우리내외 호박잎 실농 원인은 ‘호박구디’였다. 호박은 호박구디가 좌우하고 호박구디는 ‘거름구디’라고 부를 정도로 거름이 중요하여 지난가을부터 올봄까지 사전작업 ‘거름 삭히기’를 끝으로 오늘 다시 호박모종을 심었던 것이다.
“여보 욕봤다요.”
“안 그래도 식겁했거만 하하하” 남편이 호탕하게 웃고는 호박구디를 장화발로 꾹꾹 다졌다.
올해는 바라본다. 단풀내 가득한 호박쌈을, 넓고 푸른 잎사귀 아래 솜털 뒤집어쓴 녀석들 누렁탱이로 하나둘씩 여물기를, 깡마른 엄마 젖가슴에 오글오글 맺혀 이토록 실직해진 우리가 더 이상 죄스럽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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