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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

기사승인 [26호] 2019.09.05  13: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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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희 수필가, 소나무5길문학회 회장.

새벽녘 잠결에 빗소리를 들었다.

두둑 투둑 투두둑…. 창문과 창틀을 두드리는 소리다. 투박하지만 경쾌하고 군더더기 없는 소리다. 순간, 잠자고 있던 세포가 요동을 친다. 빗소리다! 얼마 만에 듣는 소리인가. 예고 없이 찾아 온 벗 인양 반갑다.

올여름 뜨거운 열기 속에서 얼마나 갈망했던 빗소리인가. 오랜 소망이 이루어진 것처럼 들뜬 마음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방안에서 빗소리를 들어보기도 참 오랜만이다. 방음이 잘 되어있는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는 창문을 열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주택으로 이사를 오자 이렇게 빗방울의 두드림을 듣게 되었다. 때마침 촤르르…. 새벽녘 자동차바퀴가 빗물을 튕기고 지나가는 소리조차 기분 좋은 화음으로 다가온다.

나는 언제나 빗소리가 좋다. 기분이 좋으면 좋은 대로 우울할 적엔 우울한 대로 그 분위기에 젖고 싶다. ‘빗소리’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까만 우산을 들고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화면 속에서 나는 듯 춤을 추던 진 켈리 주연의 뮤지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다. 사랑하는 연인과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남자가 빗속에서 물방울을 튕기며 그 기쁨을 춤으로 표현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다. 남자의 경쾌한 율동과 멋진 스텝, 무엇보다 사랑에 빠진 그 표정은 보는 이들마저 행복하게 만들었다. 내 기억 속 멋진 명화 중 하나다.

언젠가 시골집 툇마루에 앉아 있을 때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 저 너머 능선에서부터 뿌연 안개비가 시작되었다. 안개비는 서서히 다가와 마당에 도착하자마자 후두둑 빗방울을 뿌리더니 순식간에 쏴아! 하고 소나기를 퍼부었다. 품새 너른 산들은 어느새 거대한 깃을 벌리며 쏟아 붓는 물줄기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짙은 숲도 기다렸다는 듯 스펀지처럼 물줄기를 빨아들이고 있다. 회색빛 산야에 뿌리는 빗줄기를 담담히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평소의 평정심에서 한 옥타브 가라앉은 기분이다. 생활 속에 쌓여있던 불만이나 앙금도 스르륵 씻어 내려주는 것 같다. 한 폭의 무채색 풍경은 나의 넋을 빼앗아 버린다. 갑자기 요란스러운 불협화음에 내려다보았다. 마당 시멘트바닥에 빗방울이 톡! 톡! 툭! 툭! 툭! 또톡! 토똑! 여기저기 튕겨 오른다. 그 잔망스러움이 개구쟁이들의 물장난 같아 빙그레 웃음을 자아낸다.

난타 공연을 빗소리로 들은 적이 있다. 어느 가을비가 내리는 날, 우연히 친구와 함께 성주사 곰절에 가게 되었다. 입구에 도착하니 비는 더 세차게 내리고 우리는 차안에 가만히 앉아있기로 했다. 양철처럼 얇은 승용차 지붕 위로 빗줄기는 세차게 퍼부어 댔다. 두두두둑 두둑 두둑 투둑 투둑…. 머리 위에서는 다양한 빗방울 악기들의 화음이 시작되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공연을 들었다. 이런 난타공연을 어디에서 들을 수 있을까.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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