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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학문과 민간신앙에서 구복의 단절

기사승인 [0호] 2019.05.17  14:4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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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훈 대한황실진흥원 교육연수원장.

5월에 있는 스승의 날의 기원은 유교문화에 있다. 기독교가 예수탄생을 기리기 위해 12월 성탄을 두고 있고, 불교에서 음력 4월8일로 석탄일을 정한 것처럼 유교에서는 스승의 날을 제정하고 있다.

이는 모두 자기 종교 성인의 탄생과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양력으로 5월15일이 스승의 날로 제정 된 것은 1965년의 일로 이 날은 세종대왕의 탄신일이다. 대왕은 유교국가 조선의 가장 존경받는 성군으로 간주되어 원래는 스승의 날이 25일이었으나, 그 근원을 밝힐 수 없어 세종대왕의 탄신일인 15일로 재정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성인들의 탄신일은 국경일로 정하고 있다. 성탄절과 석탄절은 법정공휴일로 제정되었으나 스승의 날은 법정공휴일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 또한 기독교나 불교에 비해 유교가 홀대를 당하고 있는 부분이다.

유학의 시조는 공자이고 신유학의 중시조는 주자이다. 조선은 주자를 신봉했으며 주자의 탄신일인 9월15일과 사망일인 3월9일을 향사의 기원으로 해서 일 년에 두 번 춘사와 추사를 정하고 있다. 조선왕조가 폐조된 지금에 이르러서는 거대 행사였던 주자의 탄신일과 사망일은 유명 무색해져서 오늘날은 일부 유림에서만 제를 올리는 날이 되었다.

유교국가 오백년의 전통은 이렇게 소멸되어 가는 추세이다 대신 외래종교들이 그 자리를 대신해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스승의 날은 마지막 남은 성인국가 조선유교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유교에서 스승의 지위는 부모와 군주의 중간에 있다. 우리가 충을 중심으로 볼 때는 ‘군사부일체’이지만 효를 중심으로 볼 때는 ‘부사군일체’인 것이다. 유가에서는 부부를 일심동체라고 하고 부모와 스승과 인군을 일체로 보고 있어 일체는 동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숫자적으로 이를 판단할 수 없고 인간의 성장과정으로 이를 보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8세 이전에는 부모나 조부모의 슬하에서 양육과 훈육을 받다가 8세가 되면 스승에게 나아가 수학을 해야 한다. 스승에게 공부를 배워 18세가 되면 등과를 준비하여 과거를 보고 군주에게 나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자식은 어린 시절에는 부모를 따르고, 공부를 할 때는 스승을 따르고, 등과한 후에는 임금을 따르는 것이 바른 도리라 하여 이를 군사부일체에 담은 것이다. 따라서 유가의 스승은 경전에 있는 성인의 도리를 전수하는 자이다.

스승을 통하지 않고는 등과에 나야갈 수 없고, 성인의 도리를 배우거나 익힐 수 없으며, 사람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이를 ‘군자지도’라고 한다. 따라서 스승은 군자를 기루고 양성하는 자를 말한다.

오늘날 스승의 날은 이로부터 많이 의미가 변질되고 벗어나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나 불교에 비해서는 그 의미가 제대로 이어져오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교학적 전통과 그것을 전수할 스승들이 대거 소멸해버린 데 있고 외래 종교에 의해 대체되어버린 것에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본래의 의미를 잊어버리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땅에는 고타마싯다르타나 예수 같은 성인들을 전하는 성직자들은 있지만, 공자나 주자 그리고 조선의 성왕들의 학문이나 정신을 이어오고 전수하는 스승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유교문화의 학문적 측면만이 아닌 기복적 요소마저 사라져버렸다. 타종교와 비교를 해보면 한국에서의 유교문화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고 파괴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유교가 통치이념이자 종교인 탓에 자체적으로 기복적인 요소들이 없지는 않다. 다만 그 대상이 타종교와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것이 차이점이다.

유교에서는 조상신이 기복의 대상이다. 농경민족의 통치이념 선택은 불교나 유교가 적합한데 불교가 비록 인도에서 발원했으나 대승불교가 꽃을 피운 것은 북방의 스텝이고 북방길을 타고 중국의 북부로 유입되어 북방민족에게 강한 영향력을 미쳐왔다.

이와 같이 불교는 남방이 아닌 북방에 부합하고, 남방에는 교종의 변종인 선종의 형태로 불교가 전해지게 된다. 중국에서 선불교는 이렇듯 북방의 교종과 다른 기후와 생활방식 그리고 생존양식의 차이와 기질을 반영해서 비롯되었고, 남방의 문맹률이 높은 데에서 깨달음의 근원을 경전이 아닌 마음에서 찾는 것으로 전파되고 전해지게 된 것이다

반면 원시유학이니 주자 이후의 유학은 남방이념과 사상의 결실이라고 할 것이다. 북방의 불교가 비판적으로 남방의 유교에 흡수되어 사상적 진화가 추동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는 대안이자 극복의 과정을 거치고 수단으로도 기능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주자학은 북방의 교종과 남방에서의 선종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의식과 대안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성리학은 유목이 아닌 농경이 중심 되는 남송 남방의 종교적 이념으로 삶의 조건과 기후 그리고, 송나라라는 문치국가의 성립과 영향으로 그 근원을 찾을 수가 있고 남방인의 정서에 잘 부합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남방인의 성향이 유입되어 유교는 다분히 이상적인 것이 아닌 현세적이고 폐쇄적이며 동적인 교리를 표방하지 않게 된 것이다.

고려 건국의 주체는 한반도의 북방인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북방의 특성에 맞는 불교를 국교와 국시로 삼았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의 개국은 남방의 학자들에 의해 유교국가로서 세워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두 축인 불교와 유교는 각기 발원과 유래에 있어 남북을 대표했다고 할 수 있고 이런 조류는 한반도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백년도 안 되는 시간에 말아먹고 만 것이다.

서부경남신문 webmaster@seob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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