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 전 억울하게 희생된 517명 넋 위로
박산골희생자유족회(회장 신도철)는 지난 8월 31일 한국전쟁 중 신원면 박산골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합동 제례를 신원면 박산 합동묘역에서 거행했다.
유족회에서는 매년 음력 7월 28일 ‘거창사건’으로 인한 박산골 희생자 517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합동 제례를 지내오고 있으며, 이날 제례는 이성열 거창사건희생자유족회장, 김춘미 거창사건사업소장, 이수용 신원면장을 비롯한 기관단체장 및 유가족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치러졌다.
박산골 민간인 학살 사건은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 일대에서 인민군과 빨치산을 토벌 하던 국군 제11사단 9연대 3대대 군인들이 신원면 일대 주민 1,000여 명을 적과 내통한 통비분자라는 혐의로 신원국민학교 교실에 감금하고, 1951년 2월 11일 군, 경찰, 공무원, 청년 방위대 등 가족들을 제외한 주민 517명을 집단 학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1951년 2월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 일어난 거창사건 전체 희생 주민 719명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신도철 박산골희생자유족회장은 “오늘 합동제례를 통해 무고하게 돌아가신 박산골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다시는 과거의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성열 거창사건희생자유족회장은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배상법안이 폐기되었지만, 22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입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힘을 모아 주시기 바란다”라고 했다.
한편, 신원면 박산 합동묘역은 거창사건이 발생한 지 3년 후인 1954년 유골을 수습해 조성됐으나, 1961년에는 5. 16 군사정권에서 위령비를 정으로 쪼아 땅에 묻고 개장 명령을 했던 아픔을 겪으며, 1967년에서야 비로소 합동 묘소를 마련할 수 있었다. 박산묘역은 남자 합동묘 1기와 여자 합동묘 1기, 소아 비석 1기로 조성되어 있으며, 합동묘소 앞에는 아직도 쓰러진 위령비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