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하 경상국립대학교 재정지원실장 |
처음 내가 갱년기라는 말을 쓴 건 40대 중반이었다.
이제 갱년기가 되었으니 어쩌고저쩌고…, 했을 때 나보다 선배인 이들이 크게 웃었기에 기억한다. 그러고 얼마 안 되어 그 이름 석 자의 갱년기를 실제로 만나게 됐다. 처음엔 단순피로감으로 왔다.
부서에서 일어나는 일을 세세하게 다 조율해야 하는 팀장일 때는 거의 온종일 여러 사람과 이야기해야 했다. 멀쩡하던 체력이 오후 4~5시가 되면 책상에 엎드려야 할 만큼 바닥났다. 비슷한 시기에 생리불순으로 병원엘 갔는데 무조건 에스트로겐 복용을 권했다. 부인병을 유발한다는 그 호르몬제를 먹고 싶지 않았다. 두세 군데 산부인과를 거쳐 대형 산부인과에 갔을 때다. 조직 검사를 하라 했다. 몇 군데를 더 거치면서 병을 파악했다. 호르몬 수치 감소로 인한 갱년기에 접어들었고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나에겐 극심한 피로감이 온 거였다. 그 피로감이 만성 통증으로 이어졌다. 어느 한 군데 콕 집을 수 없게 온몸이 아팠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평생을 어디라고 할 수 없이 아팠던 내 엄마가 떠오른 것이다. 본인 스스로 신병이라고 할 정도로 귀신이 곡할 병이었다. 매년 봄이면 아예 이불을 깔고 몸져누우셨다.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 맘을 안다더니 내가 아프고 나서야 엄마의 병을 알게 된 상황이다. 여러 딸 중에 내 증상이 비슷했다. 40대에 자궁 수술을 한 엄마는 이후 평생을 호르몬 부족으로 인한 갱년기 증상으로 고생한 것 같다.
아프다는 소릴 많이도 하셨다. 아무리 애를 써도 기운을 차릴 수가 없다며, 내가 왜 이럴까도 하셨다. 실제로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도 노환이라 했고 여러 병원에 다녀도 다른 병명을 찾았을 뿐 부인과 질환일 가능성을 그 어떤 의사도 말하지 않았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우리는 아무도 병명을 몰랐다는 것이다.
다시, 내가 만난 갱년기 이야기로 돌아온다. 너덧 곳을 두드리고 의사 말을 받아들였다. 호르몬제를 먹으면서 피로감 통증이 거짓말처럼 가셨다. 자연스레 내 자매들에게 말을 했는데 이젠 약 복용을 말리는 전화가 넘쳤다. 암이 생길 수 있다느니 걱정하며. 1년 넘게 복용하던 약을 자연식으로 대체하고 유산균으로 몇 년 넘게 유지를 해왔다. 그러나 올여름을 맞으면서 또다시 몸살을 동반한 갱년기 증상이 왔고 현재는 병원 처방을 받고 많이 좋아졌다.
도대체 어디가 아픈지도 말할 수 없던 통증과 물에 빠진 듯한 무기력감이 가셨다. 내 몸에서 여성호르몬의 조절 기능은 불가사의할 만큼 영향이 크다. 나이가 들어가고 그에 맞는 식품과 약품을 선택하는 데는 끊임없이 공부도 필요하고 관심도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인생의 전환기이자 내 삶을 강력하게 지배하는 갱년기를 슬기롭게 대응하며 지나야겠다. 개인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갱년기 증상을 제대로 인지하여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터득한 정보를 나누는 것도 좋겠다. 이제부턴 갱년기와 어깨동무하며 지나가려 한다. 내가 만난 그 어떤 경험보다도 강력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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